김병욱 월드의 달라진 것들 - 감자별 종방에 부쳐 TV 읽기

김병욱 월드ㅡ 퇴행인가, 변화인가?


김병욱의 역사란 한국 시트콤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물론 송창의와 은경표라는 PD가 있어 한국판 <프렌드>라 할 수 있는 <남자 셋, 여자 셋>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현업을 떠나 있고, 그 이후에도 그다지 좋은 전례를 남기지 못했다. 타사의 여하한 시트콤들 역시 다양한 주제와 시도를 거듭했으나 몇몇 예비 청춘스타만을 남기도 잊혀졌다. 덕분에 김병욱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또는 유일의 성공한 시트콤 감독으로 남아 있다.

김병욱은 대표작도 무수하다. 송혜교와 김래원이 나왔던 [순풍산부인과], 서민정이 말 안 듣는 엉뚱한 딸로 나왔던 [웬만하면 그들을 말릴 수 없다]에서부터 최근의 대단한 히트 시리즈였던 [하이킥]이 있다. 물론 세 번째 하이킥은 크리스탈과 이종석의 다소 잊혀진 데뷔작처럼 기억되고 있긴 하지만 박하선이라는 불후의 허당 캐릭터를 성공시켰다.

김병욱의 시트콤은 기본적으로 대가족이다. 할아버지 세대가 등장하고, 그들의 자녀들 2~3인, 그 자녀들의 자녀. 그런 식으로 적어도 10인 내외의 가족이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그 중에는 무능한 자녀가 있기도 하고, 말썽부리는 아이가 있기도 하고, 고집불통에 이기적은 부모 혹은 아이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통제하고 조정하는 비교적 이성적인 가족 구성원도 등장한다. 요컨대 김병욱의 세상이란 그들 주인공들이 일궈내는 충돌과 포개짐이 가득한 공동체인 셈이다. 때때로 그 대가족이 직장 동료나 일시적 동거인, 친구 등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가족으로 보아 무방하다. 그리고 세상의 종결(시트콤의 마지막)은 언제나 일시적인 동거가 마무리되는 순간에 일어난다. 구성원 중 몇 사람의 이민(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이와 신애)이라든가 해외 봉사(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윤계상)혹은 유학(거침없이 하이킥의 신지). 그게 아니면 이사(감자별의 나진아) 나 죽음 등이 그것이다. 시트콤의 개시가 그들이 한 가족과의 동거로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임을 생각한다면 사실 이런 식의 구성은 매우 자연스럽다. 만남과 이별, 회자정리라는 사자성어가 설명할 수 있는 서사구조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구조 덕택에 시청자가 새로운 시트콤에 대해 낯설고 주저하는 만큼 극중 인물들도 서로에게 어색해 하고 적응하려 애쓰는 것이 초반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시트콤은 그래서 시간이 흘러 갈수록 극중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와 케미로 흥미를 더하게 되고 최종 결말에 이르러 시트콤 속의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커져 분리불안을 일으킬 정도의 슬픔(?)과 괴로움을 겪게 된다. 그런 탓일까? 김병욱 감독의 엔딩에 대해서는 언제나 말이 많다. 아니 그토록 충성도가 높던 시청자들의 푸념과 비판이 저주에 가까울 지경이 되곤 한다. 특히 그 절정(혹은 최악)은 아마도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일텐데, 그 끔찍한 새드엔딩은 지금도 우리 영화와 드라마에 전례가 없을 처참한 결론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이전에도 김병욱 감독은 주요 배역의 갑작스런 죽음을 결말에 배치하기도 하고('웬만해선 그들을 말릴 수 없다'의 박정수), 가장 지지했던 커플들의 이별('거침없이 하이킥'의 최민용과 서민정)로 결말을 마무리해 시청자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그러나 신세경과 최다니엘의 교통사고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시청자들을 극렬하게 반발했고, 디씨갤러리에 형성되어 있던 강력한 팬덤은 그야말로 공황에 이르렀다. 어쩌면 그 이후 신세경의 활동이 순조롭지 않았던 것은 그 결말의 여운이 강력하게 남은 까닭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최다니엘은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어 그런 짐작이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그 허망함의 여파가 극에서 불행하게 지냈다고 볼 수 있는 신세경을 그나마 영원히 묻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반면 황정음은 성공일로에 놓여 있다. 시트콤 당시에는 연기력 논란도 많았고 이후 연이은 대작 캐스팅에 대한 비아냥도 있었지만 의외로 눈물 연기와 코믹한 연기를 잘 소화해내며 시청률의 여왕이 되었다. 특히 작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미니 시리즈 [비밀]은 황정음에 대한 모든 편견을 날려 버리는 강력한 한방이었다.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은 이처럼 방영 당시의 화제성은 물론 그 이후에도 해당 시리즈에 출연했던 젊은 배우들의 변화 과정을 보는 즐거움도 준다.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면 거의 대부분의 예전작 출연자들이 카메오로 출연해 시트콤끼리의 연관관계(?)도 부각시켜 주는 등 이른바 김병욱 월드의 재구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감자별]의 경우는 예전만 못한 결과를 안고 비교적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120회에 이를 때까지 큰 화제도 없었고 출연진 중 누구도 광고에 캐스팅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하연수가 이종석과 함께 화장품 광고를 하긴 했으나 기존에 김병욱 피디의 시트콤 주연들에 비하면 어림없는 성적이다. 굳이 황정음이나 신세경(가장 성공했던)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백진희나 박하선(가장 실패했다고 평가받던)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여진구나 고경표도 마찬가지다. 고경표는 이를테면 최민용이나 최다니엘의 스핀오프인 셈이고, 여진구는 윤시윤의 스핀오프로 보이는데 전혀라고 할 정도의 반응이다. 여진구의 경우 아역으로 상당한 팬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을 통한 세몰이는 실패한 모양새다. 고경표는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냉철한 전문 경영인의 이미지를 시트콤 바깥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참으로 많다. 이들 배우는 기존의 김병욱 시트콤 주연들처럼 생짜 신인도 아니었고, 연기력 논란으로 시끄러운 이들도 아니었다. 서예지의 경우 연기에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지만 타고난 몸매와 독특함으로 타개해 나갔고, 실질적인 주연이라 할 수 있는 하연수와 여진구, 고경표는 워낙 다재다능해서 기대가 적지 않았다.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이 마냥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다소의 슬픔이 저변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의 역량은 크게 작용한다. 이번에는 그런 슬픔과 즐거움의 미묘하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최적의 배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적극적 반응과는 만나지 못했다.

김병욱 감독은 이제 더 이상 일일 시트콤은 하지 않겠노라 천명했다는데 사실 문제는 매일 찍어대는 방식이 아닌 것 같다. 특히 이번 [감자별]은 그의 전작에서 없던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먼저, 모든 출연진이 아주 짧게라도 매회 등장했다는 것이다. 물론 줄리앙과 그의 여자 친구 미나, 장기하 등을 제외하고 가족들은 정말 짧게라도 등장했다. 기존의 시트콤에서는 몇몇 역할들이 돌아가면 주인공을 맡는 식이라 러브 라인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매회 등장할 수는 없었다. 두번째 다른 점은 주인공들의 극단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서예지는 기존의 황정음이나 신지와 달랐다. 적당히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있고, 달라진 상황에서 자신의 사치하는 습관을 바꾸려 노력한다. 하연수도 마찬가지다. 신세경처럼 극단적으로 어둡지 않았다. 백진희나 김지원처럼 청승맞지도 혼자 붕 떠있지도 않았다. 일도 열심히 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앞일을 생각한다. 대표님이나 홍버그와의 로맨스에서도 비교적 냉정했다.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의 모두를 거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세 번째, 기존의 시트콤이 매번 두 개의 에피소들을 보여줬다면 [감자별]에서는 세 개의 에피소드를 보여줬다. 덕분에 시간도 늘어 났고, 매회 모든 등장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보는 입장에서는 사실 비교적 긴 러닝타임이 좋았다. 모든 인물들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궁금한 커플들의 이야기가 매번 다뤄진다는 점이니까 이야기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유리했다. 네 번째 다른 점은 직장이 배경이었다는 점이다. 매번 학교나 병원 같은 데가 늘 주요 배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사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고 아이들 자라는 문제 등이 주요 쟁점이었던 반면 [감자별]의 배경은 완구 회사였기 때문에 산업 스파이라든가 적대적 M&A 같은 소재가 등장했다. 다른 비슷한 소재의 미니 시리즈에 비하면 부족하기 그지없는 구성이긴 했지만 매번 비슷비슷한 배경이었던 것에 비해 새롭고 신선했다. 완구 개발과 판매에 대한 소재 활용도도 나쁘지 않았다. 다섯 번째, 해당 세계를 파괴하려는 확실한 적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기존의 시트콤은 내부에서 알력과 다툼이 있기는 했어도 그 구조 혹은 그 세상을 부수려는 당사자는 없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해체되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적대 세력은 없었다. 결말 부분에서 누군가의 부재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쓸쓸한 인간군상이 보여지긴 했지만 철저히 부서지고 파괴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오이사와 두 박대리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완구회사를 망하게 하려 했다. 결국 그 뜻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시리즈 내내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과 사고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 상당 부분 일조했다.

물론 더 많은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아니 주장하는 차이점이 사실은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두드러진 적이 있다는 점 말고는 특기할 사항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는 내내 뭔가 달라진 게 있다는 느낌은 버릴 수가 없었다. 기묘하게 달라진 지점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치 세계관이 달라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찌 됐건 [감자별]은 허무하게 결말을 냈다. 가장 애정했던 하연수와 여진구 커플의 돌연한 결별만을 남기고. 사실 산다는 게 그렇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끔찍한 순간은 연달아 오는 경우가 많다. 거의 대부분의 이별은 예정되지 않았거나 미처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달려든다. 그래서 그토록 마음 아프고 괴로운 것이다. 김병욱 감독이 늘 보여주려고 하는, 그가 애당초 전달하려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그러니 너무 행복해도 행복해 하지 말고, 너무 슬퍼도 슬퍼하지 말라는 것일까? 아니. 그러니까 기쁠 땐 더 맘껏 기뻐하고, 슬플 땐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 흘리라는 것이리라. 흔히 말하듯 모든 것은 정말 단 한번뿐이니까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여진구가 사라지기 전에 "비둘기 집"을 만들고 싶어했던 것처럼, 하연수의 이사간 집에 모든 정리정돈을 다 하려던 것처럼 그 순간을 붙잡으라는 것. 그래야 미련도 슬픔도 덜하다. 지나간 다음에 가장 괴로운 것은 다하지 못한 마음이 아니던가.
세월호 사건이 벌써 한달이 넘었다. 그동안 정상적인 생활은 했지만 마음 속 슬픔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컸다. 모든 것이 슬펐고, 모든 것이 어이없었으며, 그래서 매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글이라는 것을 쓴다는 게 엄두가 안 났다. 그동안 [감자별]이 끝났고, [밀회]도 끝났다. 쓰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던 두 드라마였는데.

아직도 안녕하지 못한 대한민국에 대한 슬픔이 마치 [감자별]의 마지막처럼 느껴진다.



덧글

  • 코튼캔디 2014/05/24 13:48 # 답글

    홍경표->고경표, 황보구->홍보구(홍버그?) 입니당.
    재미있게 본 편이지만,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기에는 약간 어정쩡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이제 김병욱표 시트콤도 안녕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에테르 2014/05/24 16:04 #

    덕분에 수정했습니다. 멋대로 남의 이름을 고쳐 부르고 말았네요. ^^
  • 9회역전만루홈런 2014/05/24 14:14 # 답글

    윗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홍경표가 아니라 고경표고요, 극 속에서 여진구의 캐릭터는 홍버그가 맞습니다 ^^
    시트콤 자체의 흡입력이 약했던건지, 전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어두운 분위기 때문인건지 저도 사실 감자별 보다가 말았네요. 주 5회라는 시트콤 특성상 한 두 회를 밀리기 시작하면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지나간 다음에 가장 괴로운 것은 다하지 못한 마음' 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참 와닿습니다.
  • 에테르 2014/05/24 16:06 #

    지적해주신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다한 마음만이 그 다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더라구요. 마지막에 여진구가 그랬던 것처럼. 암튼 저는 비교적 마지막까지 애정하며 봤습니다. 다시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은 안 보고 싶어지긴 했지만. 늘 그렇게 맘 먹으면서도 또 보고, 또 보고 그러는 것 같아요.
  • 봄의고양이 2014/05/24 21:34 # 답글

    재미있게봤던 시트콤이에요. 소소한 재미와 전보다 현실적인 얘기라 좋았어요. 홍혜성이 준혁이로 나타날무렵부터 봤는데 그래서 꾸준하게 봤는지도. 김감독님 시트콤 초반이 보기 힘들거든요. 어느정도 정리가 돼야 재밌어요.
  • 에테르 2014/05/24 23:08 #

    확실히 전작들보단 현실적이죠. 그리고 상당히 순화됐어요. 끝나니 허전하고 아쉽네요. 여진구가 없는 마지막회가 많이 슬펐어요.
  • 어떤날 2014/06/07 16:06 # 답글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입니다.
    감자별, 저도 참 애정한 시트콤입니다.
    아쉬운 면도 많았지만(김병욱 감독도 예전만큼 철저하지 못했다면서 여러 한계들을 토로하더군요),
    그래도 재밌게 봤었는데 말입니다.
    특히 여진구-하연수 커플을 그렇게 끝내게 되는 건 참 슬프더군요.
    한참동안 머릿속에 남더군요.
  • 에테르 2014/06/08 17:55 #

    맞게 썼는데 하고 보니 맨 처음에 제목이 잘못돼 있었네요. 덕분에 고쳤어요.
    감자별의 아쉬움이 벌써 꽤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져요. 우리나라는 정말 어찌나 동적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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