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이야기, 어디에도 닿지 못한 마음들_로필 3 종영을 보고 TV 읽기

제목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 3 종영을 보고

이런 망작이 없다. 기대했던 일점의 마음은 중반을 넘어서며 접고 말았다. 도대체가 이 드라마의 역할들은 다들 참 고민이 없다. 거추장스러운 부모도 없고, 먹고 살 걱정도 없고, 떠난 연인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 멋진 옷을 입고 예쁘게 웃으며 살아간다. 거기에 뭘 더 바랄 수 있겠는가. 강태윤(남궁민 분)이 너무나 간단하고도 쉽게 오세령(왕지원 분)과 다시 만날 때부터 그런 염려는 들었다. 아니 그보다 너무나 쉽게 마음을 접어버리고 신주연(김소연 분)을 만날 때 그 불안함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 과정이 너무 짧고 가벼웠다. 물론 16부작이라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주연도 아니니 덜 배려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좀 지나치지 않은가? 주연의 이야기가 탄력을 받고, 어떤 식으로든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 주변을 받치는 조연들의 이야기와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가 허술해지면서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앨런(성준 분)과 신주연의 이야기도 현실감이 떨어져버렸다. 아니 도대체 저들은 주인공이라면서 왜 연애의 주도권을 조연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거야 하는 질책마저 하고 싶게 만들었다.
신주연과 강태윤이 연애하던 그 순간, 주연이던 앨런은 그냥 거울 역할만 충실하게 했다. 여자 주인공이 원하는 지점에 놓인, 여자 주인공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도맡아 하는 거울. 그게 아니라면 과거에서 갑자가 나타난 일기장 구실. 그녀가 자신이 원래 어떠했는지, 어떤 삶을 꿈꾸었는지, 어떤 사랑을 원했는지를 깨닫게 하는 일기장.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앨런은 신주연이 아프면 간호하고, 취하면 데려오고, 힘들면 업어주고, 기쁠 땐 안아주는 거울이거나 일기장이거나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이라도 충분했다. 왜냐 하면 "세상은 나 빼고 다 남이고, 그래서 신주연은 하나도 외롭지 않으니까". 이미 여러 번 대사로도 말했고, 이야기 전반에 녹아 있던 내용은 바로 저 부분이 아닌가? 새삼 동화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나? 기린이 기린이 아니고, 추억이 추억이 아닌 것처럼, 세상이란 현실이란 원래 그렇게 온통 남으로 둘러싸인 전쟁터다. 굳이 설탕을 바를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더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나머지 배역들의 연애사다. 정희재(윤승아 분)라는 역할은 논하고 싶지도 않다. 고시 준비하는 동안 뒷바라지한 남자 친구의 배신을 어쩌면 그렇게도 간단히 처리하는지, 이내 나타난 이우영(박유환 분)과의 연애는 어쩌면 그렇게도 완벽한지. 게다가 갑자기 자각해 회사를 관두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한달 무급 휴가로 안 되겠냐?"는 신주연의 대사를 넣지나 말든지. 요즘같은 취업 빙하기에 월급 넉넉하고, 스스로도 만족하고 있는 직장을 그렇게 쉽게 관둘 수가 있나?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라 어린이 드라마에서도 사용하지 않을 구성이다.
이민정(박효주 분)의 임신 역시 마찬가지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인식이 어떤지 우리 모두 알고 있는데 그런 식의 전개가 가당키나 한가? 게다가 그렇게 자유연애를 지속해 온 여성이 피임도 하지 않았다니 이건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을 안 맞는다. 상대 남자 안민석(유하준 분)이 옆집으로 이사오는 에피소드도 참 어이가 없다. 그런 벼락 맞을 일이라니 이건 뭐 기적에 기적에 또 기적인 건가? 더 놀라운 건 하룻밤 상대인지 알았던 상대가 자상한 아빠가 될 준비를 상당히 갖춘 사람인 것. 마지막엔 달달할 듯한 장면도 넣어둬서 이 임신이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지겠구나 당연히 짐작하게 만들고 만다. 한마디로 허무한 결말인 것이다.

로맨스, 필요하다. 살아가기 힘든 여성들에겐 정말 절실한 게 사랑이다. 이건 짝이 있고 없고를 떠나 결혼 여부를 떠나 간절한 어떤 부분이다.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예쁘고 싶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받고 싶은 본능을 논외로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비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이 시리즈의 성공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칙릿 드라마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식은 곤란하다. 현실성도 없고, 그렇다고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로맨스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실현가능성이 있어야 마음이 움직이지, 이런 식의 생뚱맞은 이야기는 성가시기만 할 뿐이다.
드라마에 나왔던 어떤 역할에도 마음이 가질 않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마지막까지 어여쁜 옷들은 원없이 봤다. 그러나 어디로도 가지 못한 어정쩡함은 그들의 옷에서도 느껴진다. 아무리 패션 관련 일을 한다고 한들, 그런 옷을 입고 일을 하겠는가? 그 아찔한 스틸레토와 몸에 달라붙는 드레스들, 그게 아니면 한껏 부풀려진 셔츠의 소매들은 잡지에서나 보고 싶은 옷들이다. 어찌 됐건 너무 과했고, 그래서 허공에 떠버렸다.

하다못해 신주연의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이라도 좀 더 세밀하게 다뤄주든가. 강태윤만 바보 된 듯한 상황, 거기에 오세령도 희생된 듯한 그런 찜찜함이 오래도록 남았다. 참 기분나쁜 결말이다. 도저히 축복해 줄 수 없는 심정이 드는 기묘한 드라다. 다음 시즌따위 기획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도대체가 로맨스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그냥 대책없이 달달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시장 조사 제대로 해서 다시 할 게 아니라면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기획이다. 이런 기획은 시작도 말았어야 한다.




덧글

  • 9회역전만루홈런 2014/03/10 15:54 # 답글

    지적하신대로 부실한 내러티브에도 불과하고 반응은 꽤 좋았던 모양이더라구요. 특히 여성 시청자들한테. 적당한 때에 나와주는 감성 돋는 대사라든지, 붙잡지 않는 그런 태도들이 오히려 '쿨하게' 받아들여졌는지도 몰라요. 결국 드라마란 판타지고 그 중에서도 연애를 다룬 드라마는 그러한 판타지가 더욱 깊이 투영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대한 시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 에테르 2014/03/10 16:04 #

    그렇다면 참 슬픈 일이네요. 여성 시청자들에게 먹히는 게 저런 류의 판타지라니. 저도 지나친 사실적 묘사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는 편인데도 이번 건 심하게 작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마지막회는 거의 분노하게 됐고. 어찌 됐든 끝맛이 나쁜 드라마였어요. 완성도따위 단 한 번도 고려한 적 없는 호쾌함은 놀라울 정도구요.
  • 전진하는 범고래 2014/03/11 06:44 # 답글

    저도로맨스가필요해 3 는 이전과비교해서 망망... .이라고생각했었어요.구체적으론생각안해는데보니까 에테르님께서 말씀하신부분이 저도너무현실감없게다가온것같아요~ 특히전 나레이션을 좋아하는사람이였는데(로필2짱짱!!) 로필3에선...와닿지않더라구요. 기대많이했었는데 중반되니까 전못견디고 아예 시청안하고 인터넷으로심심하면보는수준.....까지전략해버렸어요. 너무글잘읽었습니다^_^
  • 에테르 2014/03/11 09:45 #

    드라마가 환상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죠. 구딜구질한 얘기를 보는 건 사실 힘들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번엔 좀 심했어요. 끝까지 보는 거 쉽지 않았어요.
    제 글 읽어주셔서 저도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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