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난 연기, 빛난 생명력_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영화 보기


2014년 3월 9일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감독 장 자크 발레
출연 매튜 매커너히(론), 제니퍼 가너(이브), 자레드 레토(레이언) 등

매튜 매커너히는 전형적인 로맨틱 가이였다. 성공했던 작품도 그렇고 그가 펼쳐온 필모그래피 역시 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에 참여한 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스위트 가이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작품이라 그런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잠깐 등장하던 때도 어딘지 낯설고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큰 상을 받고, 국내에 개봉된 그의 작품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적어도 작품을 제대로 고르는 능력이 있고, 상을 받을 만한 연기를 한 건 분명한 배우라서. 물론 상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열등한 건 아니지만, 계속 언급되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교되는 부분이 분명해서 더욱 돋보였다고 할까?
사실 이 작품의 감독인 장 자크 발레의 다른 작품을 보지 못해서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단지 등장하는 배우들은 이미 눈에 익은 배우들이고, 몇 편이나 봐왔던 작품들이 있어 얘기할 만한 부분이 있다 싶은 정도. 그렇다고 이 작품 자체가 설다거나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화 기반이 아니라고 해도, 극적인 부분이 충분히 많고 잘 제어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첫 장면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로데오라는 극적인 스포츠와 도박과 마약과 술, 섹스가 한 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구축샷은 또 다른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인가 하는 의심이 들게 만들 정도다. 그러나 이후 차분하게 병에 대해, 그 병을 이겨 내는 것에 대해 전개해 그런 도발(!)은 구조적으로 혹은 이야기 전개를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여겨지게 만든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장점이 바로 그런 부분인데, 충분히 자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을 적절하게 배치해 완급을 조절한다는 점. 덕분에 이야기의 본질에 보다 깊이 접근할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람이든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제도와 자본이 막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에 대해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섹스와 마약은 필요한 장치이긴 하지만 불필요하게 강조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였다면 매튜 매커너히의 17 킬로그램에 이르는 감량이 화제가 됐겠지만 이 작품에서 그의 감량은 그의 놀라운 역할 해석에 밀려 그리 빛나지 않는다. 물론 영화 초반에 그가 매튜 매커너히라는 걸 알아 보기 힘들 정도로 야위어 거듭 확인하게 만들긴 한다. 그러나 [아메리카 퍼즐]에서 확실히 망가진 크리스천 베일을 이미 봐서 그런지 매튜의 감량은 그렇게 돋보이지도 않았다. 감량보다 설득력 있는 것은 그의 눈빛. 병을 인지한 순간, 부정하는 시기, 있는 힘껏 살아가려는 시기 등등, 역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던 그 눈빛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할 레이언(자르드 레토 분)에 대한 태도 변화는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츤데레라고 할까? 겉으로는 씹어대고 괴롭히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염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그의 카우보이 모자에서도 뚝뚝 떨어졌다.

배우가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은 그런 게 아닐까?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삶을 사는 것. [홀리 모터스]에서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도 그런 부분.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마음에 아프게 남았던 거고. 물론 그런 배우의 변화 덕분에 관객이 느끼는 즐거움도 커지는 게 사실. 영화란 감독의 예술이라고 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직접적으로는 배우의 것인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나와 기억에 남는 것은 전적으로 타이틀롤이거나 엄청난 역할을 맡았던 조연이고 그들의 연기가 강렬하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번 작품이 특이 더 그런 유형인 듯하다. 매튜 매커너히의 경우도 그렇지만, 자레드 레토의 탁월함도 잊혀지지 않는다. 첫 등장부터 그의 연기에는 어떤 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매번 마치 정지 화면 같던 그 표정, 전형적인 못된 계집(bitch)같은 표정은 정말로 놀라웠다. 그 이상의 다른 배우가 있었을까? 누군가의 표현처럼 매튜 매커너히의 오스카 수상은 상당 부분 자레드 레토에게 빚지고 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두 배우가 치열하게 보여주던 것, 영화가 끝까지 밀어붙여 말하고자 하던 것은 온전히 "생명의 질긴 아름다움"이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것은 사랑, 적어도 인간애 비슷한 것. 그걸 붙잡고 있는 한은 누군가는 살아있는 걸 확인받는 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참 아름답다. 끝까지 아름다워서 마음이 아픈 영화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