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귀여운 여자들 - 천송이, 신주연, 이수경을 중심으로 TV 읽기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 <식샤를 합시다>의 이수경, <로맨스가 필요해 3>의 신주연. 이들은 제법 귀엽다.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많이 성공한 천송이도, 이혼한 지 3년된 법률사무소 직원 이수경도, 경력 짱짱한 홈쇼핑 MD 신주연도 일을 하던 도중 혹은 연애하는 때에는 반드시 귀여워진다. 백치미를 드러내거나 먹을 것에 집착하거나 난데없이 어리광을 부리거나 하며 나이에 맞지 않은 혹은 위치에 맞지 않은 행동을 연이어 해대는 것이다.

별그대에서 천송이 역을 맡은 전지현은 한 때 섹시함으로 승부를 본 적이 있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프린터 광고부터 샴푸 광고, 화장품 광고까지 전지현이 입은 것, 먹는 것, 사용하는 모든 것은 섹시하기 그지 없었다. 오죽하면 화장품 광고에서 동요를 불러도 섹시하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로필의 신주역 역을 맡고 있는 김소연 역시 나름 섹시한 배우였다. 데뷔작이었던 <공룡선생> 말고 비중이 적었던 <도시남녀(1996)>에서도 그랬고 <이브의 모든 것(2000)>에서도 그녀는 당차며 섹시했다. 함게 나왔던 채림이 귀여운 이미지에 기대고 있었다면 김소연은 진짜 아나운서 같은 발음과 함께 남자 주연을 후리고 휘두르는 매력이 상당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며 단아하거나 깍쟁이 같은 느낌으로만 흐르다 <검사 프린세스(2010)> 이후로 김소연만의 귀여움을 선보이게 됐다. 물론 이는 이전 작품 <아이리스(2009)>의 남다른 성공으로 인한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 비해 이수경은 독특한 색깔은 없다. 흥행이 안 된다거나 눈에 띄게 폭망(!)한 작품이 없긴 하나 스스로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없고,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게 남는 역할도 없다. 그 중 <소울 메이트(2006)>의 수경 역이 그녀에게 가장 어울렸고 가장 좋은 배역이기도 했다. 그런 이수경을 귀엽다고 할 수 있을까? 귀엽다고 하기엔 너무 말랐고, 섹시하다거나 성숙하다고 하기엔 또 너무 울상이다. 물론 예쁜 사람임에는 분명하나 배우로서 그 한계가 뚜렷하게 보이는 얼굴이라고 할까?
 
이런 그들이 일제히 귀엽고자 한다. 전지현은 그녀의 대표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의 재림이 아닐까 싶은 연기 패턴을 보인다. 술 먹고 망가지고, 노래 부르면서 넘어지고, 남자에게 잘 보이려다가 딴청도 피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게 되자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스스로에게 진지해진다. 예쁜 사람이 망가지면 얼마나 귀여운지 그녀는 이미 자신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 환호하던 팬들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2004)>에서는 일제히 외면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연기에 대해 인정해 주지 않던 사람들이 <도둑들(2012)>의 예니콜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모르겠는가? 자신이 가야 할 지점이 어디인가를. 그런 내공 덕분에 이번 드라마에서 그는 단련된 '귀여움'을 보여준다. 물론 연출의 덕과 극본의 공이 없을 리 없다. 극본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과 <내조의 여왕(2009)>의 박지은이다. 연출 역시 <쩐의 전쟁(2007)>과 <바람의 화원(2008)>, <뿌리깊은 나무(2011)>의 장태유.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제 전지현의 귀여움이 어느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귀여움으로 언제까지 승부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쏟아지는 CF를 보면 그녀의 성공은 기정 사실이 된 듯하다. 철저히 전지현화가 진행된 귀여움, 그게 이번 기회에 만개한 것.

김소연의 귀여움은 살짝 다르다. 서른 넷의 직업적으로 성공한 독신녀. 연애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고, 가는 남자 붙잡지 않는 쿨함도 선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어릴 때 돌봐주던 철부지(!)가 등장해 사랑을 고백한다. 세상에 자기 편은 단 하나도 없다고 장담하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고 먹이고 재우는 친절하기 그지 없는 여섯 살 연하 앞에서 그녀는 마음껏 어리광을 부린다. 음식 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업어달라고 보채기도 하고, 군고구마를 사다 달라고 협박도 한다. 그러나 그녀보다 훨씬 더 귀엽게 보이는 순간이 앞서 있었다. 직장 상사 강태윤(남궁민) 앞에서 보였던 애교. 쇼파 위를 겅중겅중 뛰며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던 모습은 좀 과장돼 보이긴 했어도 확실히 귀여웠다. 탕비실에서 '자신에게만 보이는 웃음'에 대한 강태윤의 고백에 이은 "그거 뭐야? 나 살짤 설렜어" 할 때의 반응 역시 귀엽기 그지없다. 생활화된 귀여움이랄까, 일부러 지어낸 귀여움이 아닌, 연기가 아닌 귀여움. <검사 프린세스>에서의 해맑던 철부지와는 완전히 다른 귀여움.

이수경 역시 최근 들어 귀여워졌다. <식샤~> 초반에서는 그저 히스테릭하기만 했다. 이혼을 해서 생긴 상처인지 혼자 지내며 생긴 방어의 일종인지 모를 경계와 의심이 그녀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단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때에만 그 경계가 풀리고, 그 순간에만 비로소 활짝 웃게 된다. 그러던 그녀가 구대영(윤두준)이 "식샤"님임을 알게 된 순간 귀여움은 활짝 피어났다. 시도 때도 없이 설레고, 국수 한 젓가락에도 기쁘고, 남겨준 고기 한 점에도 의미 부여하는 귀여움. 셋 중 가장 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또 슬픈 귀여움.

천송이, 신주연, 이수경은 각자 처한 상황도 다르고 주어진 여건도 다르다. 그래서 귀여움이 폭발하는 시기나 방식도 달라진다. 문제는 도대체 왜 지금 이 순간, 나이나 직업을 막론하고 귀여움인지. 상대역의 남자들은 도도하고 차분하게 나오는 데 반해 왜 이들은 이렇게 귀여워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어떤 상황에도 여성이란 예뻐야 하는 것처럼 귀엽게 보이기도 해야 하는 걸까? 고분고분하고, 상냥하되 남성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협조적이고, 순응적이고 그러나 때에 따라 위트 있는 말도 해야 하는. 상처가 있을 수도 있고, 아픔이 있을 수도 있지만 상대 앞에서는 활짝 피어나야 하고 그 모든 상처가 사라지고 마는. 여성으로서의 독립성이나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성품과 무관하게 특정 상대 앞에서의 귀여운 사람이라야 하는 이유.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른 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슈퍼 마초 여성이 이상인 게 아니고, 어떤 성이 됐든 다른 성을 누르거나 강제하는 쪽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그저 이렇게 나아가고 있는 일방적인 양상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언급한 여성 주인공들은 셋 중 누구도 자신의 운명 혹은 자신 몫의 삶에 대해 주도적이라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는다. 특히 사랑에 대해서는 지지부진하며 상대의 눈치만 살핀다. 그나마 천송이가 '여행'이라는 카드를 내세우며 전개를 이어가고 있지만 상대의 한계에 대해서는 다 알지 못하는 형국이니 주도권을 쥘 수가 없다. 이수경 역시 자신이 이혼녀라를 것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주변에 경쟁하는 다른 처자들이 있기도 하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는 알게 됐어도 한발짝 떼기가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은 여전하다. 신주연 역시 애매한 입장이다. 앨런 주와 동거하고 있고, 강태윤과 오세령 사이에는 끼어 있는 상태이다. 그녀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묘안이 생길까? 지금으로 봐선 불가능. 그렇게 이리저리 눈치만 보다 말 것이다. 애매하게 착한 성격이라 그럴 것이다. 

묘하게도 이 세 편의 드라마는 이제 딱 네 편~여섯 편 정도를 남기고 있는데 지금의 상황이 역전될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이야기는 본격 커플 맺기로 진행되고 있고, 여성들은 저마다 자신의 장기를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예의 귀여움이 만개하게 될 것이다. 사실 제일 좋은 것은 그대로 봐주는 것이리라. 귀엽구나 예쁘구나 잘 먹는구나 하며. 그런데 어쩐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 강제로 떠먹여 주는 결말을 봐야 한다는 것이 영 찜찜하고 개운치 않다. 그리고 사실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 더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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