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그녀: 디스토피아를 팬시하게 표현하기
근미래의 사랑을 다뤘다고 광고했다. 시나리오가 뺴어나서 상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음악이 너무나 아름답더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어쨌든 요아킨 피닉스와 에이미 아담스라기에 무턱대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참 의외였다. 기대했던 모든 것과 너무나 달랐다. 아니 음악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몇몇 노래는 계속 마음에 남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것, 시작했다 스러지는 그 모든 과정에 대해 숱한 영화와 소설과 드라마가 이야기했다. 당신이 꿈꿨던 사랑과 당신이 실제로 겪었던 사랑의 간격은 이만큼 정도인지 않느냐고 다들 일제히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만큼 집요하게 남자의 사랑, 찌질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마음을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약간의 치장과 조금의 장식을 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제목은 [그녀 her]지만 실제로 이 작품이 보여주는 내용은 '그'다. 지치고 외롭고, 상처로 빼곡하지만 누군가를 안고 싶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기고 싶어하기를 원한다. 실제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러나 그 '누군가'가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분명한 "그녀"이다.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고 달아나려 해도 원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결코 만날 수 없는,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그렇게 슬픈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정작 주인공인 테오도르가 입고 나오는 옷은 계속해서 밝은 오렌지 컬러 일색이다. 마지막 장면 외에는 그는 계속해서 붉으느 계통의 옷을 화사하게 입고 나온다. 그가 일하는 직장도 캔디 컬러로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고, 사용하는 컴퓨터의 os 바탕색 마저도 밝은 오렌지 계통이다. 기묘한 것은 그처럼 화사한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외기는 안개에 싸인 듯 뿌옇기만 하다. 바닷가에 간 잠깐 외에는 내내 뿌옇고 습기 차고 무겁게 내려 앉아 있다. 그 배경이 로스앤젤레스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흐릿하기까지 하다.
이야기의 무거움과 실내 세트와 의상의 발랄함, 외부의 차분함과 어두움. 이들이 이루고 있는 기묘한 조화는 영화의 분위기를 조금 더 상승시키고 고조시킨다.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화면 전반에 흐르는 기색만으로도 영화의 대부분을 짐작할 수 있는.
몇 장면은 대단히 불편하다. 남성 입장의 어떤 장면들. 특히 침대 위주의 에피소드는 참 견디기 어려울 만큼 메스꺼웠다. 실제감을 위해 그토록 생생했는지 모르겠지만 예상치 못했던 장면 전개가 과연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초반까지 영화에 몰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낭만적인 듯 전개되는 몇 장면은 무리하다 싶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싶기도 한 것이 내내 마음을 조이게 만들었다. 애초에 결말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일까? 어찌 됐든 영화의 결말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 과정의 치밀함과 생생함이 여러가지 생각을 오가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근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다뤄진 바 있다. 여러가지 방식의 사랑에 대해서도 충분히 다뤄졌다. 새로운 매체 환경이 인간을, 또는 인간 사이의 정서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예견도 수많았다. 그러나 가장 팬시하게 암담한 결론. 그러나 그렇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매체 때문이 아니다. 늘어나는 이혼과 자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사실 근미래로 국한된 일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근거는 있을까?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 어찌 됐건 그 모든 고통에 대해 위로는 될 수도 있겠다. 사실, 산다는 것과 사랑이라는 것에 어떤 정답이 존재하겠는가? 우리는 이미 그 답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영화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고 싶은 일말의 기대 또는 환상 뭐 그런 것일 테니 말이다. 알량한 기대면 어떤가, 또 보잘 것 없는 환상 따위면 또 어떤가?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환상이라도 희망이라도 부여잡고 가는 것이겠지. 때때로 문득 그런 희망에라도 눈길 주며 사는 것이겠지.
근미래의 사랑을 다뤘다고 광고했다. 시나리오가 뺴어나서 상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음악이 너무나 아름답더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어쨌든 요아킨 피닉스와 에이미 아담스라기에 무턱대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참 의외였다. 기대했던 모든 것과 너무나 달랐다. 아니 음악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몇몇 노래는 계속 마음에 남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것, 시작했다 스러지는 그 모든 과정에 대해 숱한 영화와 소설과 드라마가 이야기했다. 당신이 꿈꿨던 사랑과 당신이 실제로 겪었던 사랑의 간격은 이만큼 정도인지 않느냐고 다들 일제히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만큼 집요하게 남자의 사랑, 찌질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마음을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약간의 치장과 조금의 장식을 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제목은 [그녀 her]지만 실제로 이 작품이 보여주는 내용은 '그'다. 지치고 외롭고, 상처로 빼곡하지만 누군가를 안고 싶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기고 싶어하기를 원한다. 실제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러나 그 '누군가'가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분명한 "그녀"이다.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고 달아나려 해도 원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결코 만날 수 없는,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그렇게 슬픈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정작 주인공인 테오도르가 입고 나오는 옷은 계속해서 밝은 오렌지 컬러 일색이다. 마지막 장면 외에는 그는 계속해서 붉으느 계통의 옷을 화사하게 입고 나온다. 그가 일하는 직장도 캔디 컬러로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고, 사용하는 컴퓨터의 os 바탕색 마저도 밝은 오렌지 계통이다. 기묘한 것은 그처럼 화사한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외기는 안개에 싸인 듯 뿌옇기만 하다. 바닷가에 간 잠깐 외에는 내내 뿌옇고 습기 차고 무겁게 내려 앉아 있다. 그 배경이 로스앤젤레스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흐릿하기까지 하다.
이야기의 무거움과 실내 세트와 의상의 발랄함, 외부의 차분함과 어두움. 이들이 이루고 있는 기묘한 조화는 영화의 분위기를 조금 더 상승시키고 고조시킨다.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화면 전반에 흐르는 기색만으로도 영화의 대부분을 짐작할 수 있는.
몇 장면은 대단히 불편하다. 남성 입장의 어떤 장면들. 특히 침대 위주의 에피소드는 참 견디기 어려울 만큼 메스꺼웠다. 실제감을 위해 그토록 생생했는지 모르겠지만 예상치 못했던 장면 전개가 과연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초반까지 영화에 몰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낭만적인 듯 전개되는 몇 장면은 무리하다 싶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싶기도 한 것이 내내 마음을 조이게 만들었다. 애초에 결말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일까? 어찌 됐든 영화의 결말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 과정의 치밀함과 생생함이 여러가지 생각을 오가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근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다뤄진 바 있다. 여러가지 방식의 사랑에 대해서도 충분히 다뤄졌다. 새로운 매체 환경이 인간을, 또는 인간 사이의 정서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예견도 수많았다. 그러나 가장 팬시하게 암담한 결론. 그러나 그렇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매체 때문이 아니다. 늘어나는 이혼과 자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사실 근미래로 국한된 일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근거는 있을까?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 어찌 됐건 그 모든 고통에 대해 위로는 될 수도 있겠다. 사실, 산다는 것과 사랑이라는 것에 어떤 정답이 존재하겠는가? 우리는 이미 그 답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영화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고 싶은 일말의 기대 또는 환상 뭐 그런 것일 테니 말이다. 알량한 기대면 어떤가, 또 보잘 것 없는 환상 따위면 또 어떤가?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환상이라도 희망이라도 부여잡고 가는 것이겠지. 때때로 문득 그런 희망에라도 눈길 주며 사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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